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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1. 2010.08.12 아그리콜라 트레이 제작기 Agricola component tray 5

아그리콜라 트레이 제작기 Agricola component tray


이 포스트는 작년에 했던 가장 큰 삽질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이다.
다시는 이런 짓을 할 리 없기에... 기념으로;;;;




어느날 2008년 올해의 게임상 수상작인 Agricola가 정식 한글판으로 발매되었다.
뭐 당연히 나는 그런거 몰랐다.. 심술씨가 이거 사러가는 데 따라가기 전까지는..





컴포넌트도 엄청 다양하고 많다.


아그리콜라 룰을 익히려고 보드게임 커뮤니티를 검색하러 다니던 어느날
다이브다이스에 올라온 선구자 킨님의 트레이 제작기를 본 게 화근이었다.. 


http://divedice.com/community/content.php?tid=opi&mode=view&n=3926&p=198&q=4006


'그동안 같이 즐기자고 이것저것 열심히 알려준 남자친구에게  작은 고마움의 표시로 직접 만들어볼까?
'

무식이 용감이라고, 얼마나 귀찮고 힘든 일인지 상상을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.
만들어서 팔 생각은 없냐는 누군가의 질문에  킨님이 "두 번은 못할 노가다"라고 딱 잘라 말씀하셨는데
이거 완성되던 날 밤, 나도 그 말을 백 번 쯤 되뇌였다.

솔직히 말해서 내가 쓸 목적이었다면 이런 짓 절대 안했을 거다.
작은 고마움의 표시가 아니라 생명의 은인이라도 이런 건 다시는 못 만들어준다.




아무튼.. 하드보드지 대신에 지물포 상가를 뒤져서 포맥스를 구입하고
록타이트부터 목공본드, 딱풀, 일반본드까지 문구점에서 파는 모든 종류의 접착제를 다 사왔다.
(내 손으로 뭘 만들어봤어야 알지... ㅠㅠ)
그리고 설계도를 따라 재단해서 밤마다 조금씩 작업을 하기 시작했는데...




포맥스는 록타이트로 붙이는 게 정석이라는 걸 겨우 깨닫게 되었을 뿐이고... ㅠㅠ




자잘한 컴포넌트가 들어가는 부분은 너무 깊으면 불편할 것 같아서 완충재를 잘라넣었다.




접착면의 내구도가 너무 약할까봐 포맥스를 조각칼로 조금 파냈다. -ㅅ-




드디어 트레이의 뼈대를 완성한 순간.
들떠서 사진까지 찍었지만 이 때는 몰랐다.
뼈대 만드는 게 그냥 커피라면, 마감재 바르는 건 티오피라는 것을..





킨님 말씀대로 머메이드지를 잘라서 일일이 본드로 붙였는데, 겉면만 대충 붙이고 집어치웠다.
그리곤 엄두가 나지 않아 몇 주 동안 그냥 방치해두었다가.. 어느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.




머메이드지를 뼈대의 두께에 딱 맞게 접어지도록 칼등으로 그어서 각을 잡아준 후...




하나씩 하나씩 붙여서 결국 이렇게 완성했다.

카드를 넣는 부분은 킨님의 팁대로 맨 아랫단의 카드를 꺼내기 쉽도록 받침대를 넣었는데
학생 때 쓰던 얇은 파일 홀더를 잘라서 만들었다.




마감재를 하루에 몇 조각씩 붙여나가면서 때려치우고 싶은 욕망을 108번 정도 참았다.

이 작업 중간에 심술씨하고 심각하게 다투고 연락 안한 적이 있었는데 

그 와중에도 나는 방구석에 던져둔 미완의 트레이를 쳐다보며
'여기까지 왔는데 저건 완성해서 건네주고 헤어져야지' 라고 생각했다.

지금 생각하면 농담같지만 진짜 그랬다;;;



완성된 트레이는 아그리콜라 상자에 딱 맞게 들어갔다.
마지막으로 컴포넌트를 정리해서 넣어봤다. 뿌듯함이 밀려오는 순간 ㅠㅠ




트레이를 만들고 나니 게임 스피드도 빨라지고 좋은데
정작 멤버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 몇 번밖에 못 돌려봤다. ㅠㅠ

이 게임은 귀여운 게임판과 컴포넌트들에 비해 상당히 심각하게 전개되며, 서로 자원을 가로채는 눈치싸움과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오듯 돌아오는 수확기에 식솔들을 굶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뒤섞여, 후반으로 갈수록 플레이어들의 웃음과 대화는 사라지고 한숨과 눈물만이 교차한다. 확장덱의 경우 랜덤하게 분배되는 카드운에 따라서 농부의 운명이 심하게 좌지우지되어 좀 아쉬운 감이 있었다.


재료 : 포맥스 100x100cm 한 장, 머메이드지(2절지) 한 장, 본드 두 통, 순간접착제
(포맥스는 지물포에서 구할 수 있으나 하드보드지 추천. 머메이드지는 화방에서 판매)
제작기간 : 제대로 엉덩이 붙이고 앉아서 만들면 5일 안에 완성할듯.
배우자나 연인, 친구에게 선물할 요량이라면 제작 기간 중 정말 사이좋게 지내기를 적극 추천.



P.S. 1
이거 몇 달만에 완성했더니 다이브다이스 쇼핑몰에 아그리콜라용 플라스틱 트레이가 입고되었을 뿐이고..




P.S. 2
보드게임에 너무 쓸데없는 짓을 한 게 아닌가? 이런식으로 히키코모리가 되는걸까? 약간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무렵, 인터넷의 바다에서 엄청난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;;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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